2024-11-29 묵상
주님!
저는 참으로 한 곳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계속해서 변화를 원하고 또 얼마 안있어 질려합니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아는 사람입니다.
하루는 동료와 화이트모드가 좋냐, 다크모드가 좋냐에 대해서 갑론을박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설정되어있는 다크모드를 사용했기 때문에 화이트모드를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동료를 이해해보기 위해 2주간 화이트모드와 자동으로 전환모드도 사용해봤지만,
제가 내린 결론은 다크모드 고정이었습니다.
화이트모드를 사용하니, 처음에는 잘 발견할 수 있었던 오류들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본적으로 다크모드로 만들어져서 차마 화이트모드에 대응하지 못한 곳들의 결점이 보였습니다.
자동모드는 화이트모드에서 다크모드로 전환될 때 몇개는 제대로 전환되지 않아서 어중간한 상태에 있는 곳도 보였습니다.
그냥 그 본연의 모습, 처음부터 의도했던 그 모습이 가장 자연스러웠습니다.
생각해보면,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랬던 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커스텀의 끝은 순정이다’ 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닌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여기서도 주님의 마음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저희들을 지으실 때 의도하신 본연의 그 모습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그것에 매우 많은 커스텀들을 추가해왔습니다.
누구는 불신으로, 누구는 욕심으로, 누구는 재물로, 누구는 음란 또는 동성애로.
자신들의 본연의 모습을 감추고, 이 세상의 화려한 것들로, 좋아보이는 것들로 자신을 커스텀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자신들의 모습에서 오류들을 발견해내기 시작합니다.
내 안에 있는 진정한 내 모습과 세상에서 보이는 내 모습에 이질감이 듭니다.
그것들로 내 마음이 가득 채워지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때로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어중간한 자신의 모습에 괴리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떡합니까?
프로그램을 만든 곳에서도 커스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그 커스텀을 적용한 본인에게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문제를 저희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그 문제를 품고 며칠만 끙끙대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저희의 육체가 저희의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저희의 마음대로 커스텀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저희의 정체성은 저희가 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저지른 과오입니다.
저희는 종종 그것을 ‘교만’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주님, 그 교만의 과정이 없었더라면,
제가 정말 참된 주님을 볼 수 있었을까요?
‘본래가 좋았다’라는 후회와 회개를 경험할 수 있었을까요?
주님은 그저 저희를 너무 사랑하시고, 또 사랑하시기에
그 커스텀의 여지를 남겨두셨습니다.
어차피 다시 돌아올 것을 아시기 때문이죠.
그것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저희의 죄가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죄의 과정 없이 주님을 만난다면,
그것만으로 너무 복되고 그 사람이야 말로 정말 주님께서 아끼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보고계시고 알고계시다는겁니다.
주님, 이제는 저희의 정체성을 다시 정의해주시길 바랍니다.
주님, 겸손하게 주님 앞으로 엎드리어 주님의 자녀된 저희의 몸을 드리길 원합니다.
아무리 더러운 몸이더라도 주님께서는 새것과 같이 깨끗하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믿고 의지하겠으니, 저의 마음을 끌고 인도하여주십시오!
